데이비드 오길비는 “창조적(creative)”이라는 단어를 매우 겸언쩍어했다.
“…20년 전, 창조성이란 단어가 광고 업계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당시 우리는 어떻게 일을 했을까? 지금 이 페이지를 작성하는 나 스스로도 창조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나는 광고로 세상을 움직였다> (데이비드 오길비 지음, 강두필 옮김, 다산북스) 중, 199p)
그럼에도 ogilvy-ism이라고 소개 된 그의 생각을 담은 목록 중에는 “창조적 리더의 조건”이라는 것이 있다. 그에게도 리더의 조건을 수식하는 설득력 있는 수식어가 절실했었던가? 어쨌거나… 그냥 “리더의 조건”이라고 했을 때에 비해서, 무언가 탁월한 능력을 선보이며 과감한 시도를 성공으로 이끌어내는, 그러면서도 부하들의 존경과 사랑을 동시에 받는 멋진 지도자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진부한 수식어라 할지라도 꼭 필요한 경우에 사용하면, 알맞은 말맛을 불러낼 수 있는 마법을 지니고 있다고 새삼 느끼게 된다.
그가 말한 “창조적 리더의 10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높은 윤리 의식
2.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함
3. 스트레스와 실패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패기와 쾌활함
4. 주어진 일만 꼬박꼬박 해나가는 것 이상의 명석한 두뇌
5. 밤새도록 일할 수 있는 능력
6. 매력과 설득력을 지닌 카리스마
7. 정통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혁신
8. 가혹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
9. 부하들을 열광적으로 매달리게 만드는 추진력
10. 유머 감각
몇 가지나 스스로에게 해당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2번(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는 대범함) 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5번(밤새도록 일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서는 솔직히 이제는 자신감이 없다. 2년 전만해도 5번에 과감히 Yes!라고 했을 것이다. 7번(정통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적 혁신)에 대해서는 “정통”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는,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확립된 체계’라는 것이, 우리가 일하는 세계(웹 에이전시)에 확고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모호하게 얼버무릴 수 밖에 없다고 느꼈다. 최근에 나는 9번(부하들을 열광적으로 매달리게 만드는 추진력)을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들어 힘들어했다. 나머지 여섯개 정도는 잘 해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인가? ^^
이 모두를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때때로 이 기준을 가지고 스스로를 돌아 본다면, 좀더 즐겁고 열정적인 일터를 일구어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지금, 나는 오길비의 충고에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그의 이런 말에 용기를 얻는다. ^^
“훌륭한 크리에이터들 중 온화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들은 심술궂은 이기주의자들이며, 일반적인 조직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대목을 읽고 나는 책의 속지에 이렇게 썼다.
“오길비의 글에서 용기를 얻다. 내가 지향하는 바를 그는 50년 전에 실천에 옮겼다. 그가 성공했듯이, 정직한 창의성으로 뜻을 이룰 것이다. (2008.07.08)”
그의 말로 나의 괴팍한 성격을 변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죽어가는 환자에게 필요한 의사는 냉철한 눈과 정확한 손을 가진 의사이지, 인간적이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의사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인간적이기도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만서도, 일의 현장에서 너그러움은, 때로 사람들 전체를 수렁으로 빠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차갑고 정붙이기 어렵다 하더라도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과감히 이끌고 가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할 뿐이다.
오길비의 조언은 모두 하나 하나 음미해볼 필요가 있는 명언이지만, 특히나 리더의 첫째 조건으로 높은 윤리의식을 꼽고, 마지막으로 유머 감각을 양념삼아 보탰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 두 가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우리의 일터에서 이 두 가지 만큼은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게 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이 열 가지를 두루 갖춘 창조적 리더들을 한 가득 길러내고 싶은 소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