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독자, 생산자와 소비자의 구분이 없어지고… 공중 매체의 키가 되는 대화(dialogue)는 모두의 발화(utterance)를 통해 완성됩니다. 완성이라는 표현이 좀 꺼림칙합니다. 공중매체에는 완성 혹은 종료가 없기 때문입니다. 흐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새로운 발화에 의해 언제든 개정될 수 있는 일시적인 정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SNS를 보세요. 타임라인에 한번 들어오면 어떤 발화도 무시되지 않습니다. 게시될 자리에 게시된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한 발언도 아주 허무하게 금세 흘러가 버립니다. 또한 누군가가 올리 포스팅은 댓글과 묶이면서 하나의 메시지가 형성됩니다. …… 인터넷이 지닌 실시간 대응이라는 특성이 누구에게도 저자(author)의 특권을 부여하는 걸 거부합니다.”
– 윤영민 선생님의 <소셜미디어와 집단지성> 중, “대화 11 Marshall McLuhan과의 대화 1″ 중에서
Marshall McLuhan
Dr.D
혼잣말
“디지털 스토리텔링”이 어떻게 다른 이야기하기의 방식과 다른지를 설명하려 할 때마다, 간명하게 생각을 정리하지 못해서 곤란할 때가 많았다. 윤영민 선생님의 설명 속에서 씨앗을 하나 발견하고 품에 담는다.
“… 근데 내가 서로 대비해 지적했듯이, 인쇄미디어는 사회적으로 중앙집중화(centralizing) 시키고, 심리적으로는 파편화(fragmenting) 시킵니다. 반면에 전자미디어는 사회적으로 탈중앙화(decentralizing) 시키고, 심리적으로는 통합(integrating)시킵니다. 인쇄미디어는 개인주의를 촉진시키며, 거기에서 자유(freedom)는 기껏해야 소외되고 파편화되기 위한 권리일 뿐입니다. 반면에 전자미디어는 부족주의를 촉진시키고 통합된 개인을 출현시킵니다. …”
소셜 미디어의 출현과 함께 준거집단1이라고 부르는 소속감과 행동 규범의 경향성을 이루는 사회가 물리적 규범적 소속 집단과 박리되어 별도로 존재하는 양상이 강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네트워크화된 사회 속의 자아가 어느 집단의 문화와 규범을 내재화하는지는 이제 미지의 영역이 되어버린 셈이다. 사회통합적 기능에 대한 미디어의 기능에 있어서, 소셜 미디어는 국가와 문화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준거집단을 대안모델로서 생성시키기는 했지만, 물리적 조건에 귀속된 집단과의 공존하는 매커니즘은 아직 밝혀진바가 별로 없다.
수 많은 사회적 분열과 갈들, 소외와 파편화의 양상이 있는가 하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소수자들에게는 심리적 지지기반이 되는 대안 집단 속에서 자아의 안녕을 얻을수 있다.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방식이 이 네트워크화된 준거집단들 사이에도 가능할지, 물리적 소속집단과는 어떻게 타협점을 찾고 삶과 일상의 균형을 이룰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