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는 마케터들에게 ‘딜레마‘가 되고 있다. 거의 모든 마케팅 담당자들은 모든 미디어 중에서 가장 성장속도가 빠르고 구매행동에 미치는 영향력도 큰 블로그를 주목하고 있다. 그럼에도 수 많은 블로그들에 쏟아지는 콘텐츠들의 주역인 ‘블로거’들과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그들과 어떤 방식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지는 아직 정형화된 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에서는 ‘블로거’들을 기자들과 동등한 대우를 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기자회견과 같은 형식을 갖춘 만남의 장에 관련 분야의 파워 블로거들을 초청하기도 하며, 자사의 뉴스 소스에 대해 꾸준히 보도자료를 제공하기도 하고, 취재 대상이 되는 제품이나 관련된 행사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기 위한 배려[footnote]Press Card를 내주거나, 리뷰용 시제품 등을 보내주는 일 등[/footnote]를 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은 어디까지나 국지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다.
기업의 커뮤니케이션은 아직도 ‘할 얘기가 너무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브랜드와 상품, 기업과 회사 사람들 (특히 대표자들)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쏟아놓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커뮤니케이션은 그 결과가 ‘측정 가능’해야 하고, 언론에 실린 기사의 수와 지면의 크기에 따라 성패를 평가하는 습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그들은 기자와의 관계 설정에 많은 공을 들이고, 소위 말하는 ‘기사거리’를 만들어내느라고 머리를 쥐어짜는 데 생각의 방향이 맞추어져 있다. 그들의 눈에 ‘블로거’들이란 ‘기자의 흉내를 내고 싶은 얼치기 저널리스트’로 보이는지도 모른다.
모든 변화의 과정에는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잘 못된 방향으로 질주하는 ‘덩치큰 바보‘들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그들은 대개 한 시대를 풍미하고 앞서 이끌었던 선도자였지만, 자신을 성공으로 이끈 바로 그 힘에 사로잡혀 몰락의 길을 걷곤 한다. 기업들은 이 갈림길 앞에 서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그들이 소중하게 가꾸어온 그들의 대화창구가 점점 외면당하고 있는 뚜렷한 징후를 발견하면서도, 그 움직임이 어떤 체계에 의해서 작동하는지를 아직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중파 방송국과 신문의 시청률/구독률은 서서히 미끄러지고 있는데도 기업의 광고 홍보 예산은 점점 증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브랜드를 앞세워 고객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향을 선호하고 있다. 브랜드는 기업보다 자유롭고 각 브랜드마다 고유의 개성과 매력을 담을 수 있기 때문에, 감성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는 고객들의 취향에 더 알맞다고 보인다. 블로그는 이러한 브랜드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무대로서 알맞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는 상품이나 상징을 넘어선 ‘소통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 유용한 도구를 사용하는 데에도 아직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아직도 이야기 해야할 것이 너무 많은, 자기 할 얘기가 목구멍까지 차오른’피곤한 수다쟁이’ 역할을 내던지지 못하고 있다.
기업 자체에 대한 이야기에 있어서는 더 상황이 좋지 못하다. 심하게 얘기하면 많은 기업들이 저 잘난 맛에 사는 ‘돈 많은 동창생‘의 이미지를 떨쳐내질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공헌이니, CSR이니, 지속 가능한 경영이니 외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가릴까봐 어색하게 한 판을 내밀고 다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기업이 만약 그들의 이야기거리를 찾는 데에 조금더 충실하다면, 그들이 애써 결심하고 만든 기업 블로그(또는 다른 기업 커뮤니케이션 채널)를 좀더 유용하게 소통의 창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곳의 이야기는 언제나 궁금한 법이다. 전문직 드라마 – 온 에어, 베토벤 바이러스, 종합병원2, etc. – 에 대해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적인 이유는 그들이 살아가는 인간적인 삶의 현장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블로그가 꼭 대외적인 홍보를 위한 수단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기업의 수 많은 내부 구성원들은 열린 자세로 소통할 수 있는 매개에 목말라 있다.
블로그는 사람과 사람으로서의 소통을 꿈꾸는 장이다. 스스로에게 열려 있고, 자신의 흉허물에 대해서도 여유롭고 유머러스한 태도를 가지지 못한다면, 이 거대한 소통의 무대에서 한 구석에 홀로 내던져저 있을 각오를 해야한다. 사람의 얼굴과 살가운 목소리를 가진 기업의 블로그를 꿈궈본다. 그를 만나는 날 나는 기꺼이 그를 위해 최고의 찬사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기업이 블로그의 장에 사람의 얼굴로 나타난다는 건, 가가멜이 하얀모자와 파란 분칠을 하고 스머프 마을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색하면서도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를 위해 손을 잡고 이야기 꽃이 피는 한 가운데 자리로 그를 안내할 것이다.